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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단어로 자기 소개를 해주시고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뉴욕에서 이스라엘까지” 


제가 최근에 다녀온 장소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보다 발이 빠르고, 겁도 없이 손들고 뛰어가고, 마음 먹은 순간 행동하며 당일 비행기표를 예약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 속에서 눈을 반짝이던 호기심 많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시끌벅적함을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의MBTI성격 유형은 ENFP 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아! 역시!” 라고 하십니다.  ^^ 


정열적이고 활동적이며,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과 사교 활동을 즐긴다는 성격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저는 뉴욕에서 1년간 유학 생활을 하였고, 멕시코,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두바이, 아부다비 등을 여행하고, 최근 귀국하였습니다. 

 

 

그 중 이스라엘은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였습니다. 지적인 관심이 많은 여러 나라의 좋은 친구들과 홀로코스트 부터 팔레스타인, 중동, 정치, 역사, 법, 문화, 경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어, 그곳 친구들은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지 많은 걱정과 우려가 듭니다. 

 

 

Q. 최근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오신 것으로 아는데, 어떠셨나요? 

 

“두 번째 스무 살”. 스무 살 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고 공부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레이스, 넌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네가 웃을 때 주변이 환해지는 게 보여”, “너 자체만으로도 넌 충분해.”  많은 친구들은 매일 나이, 국적, 직업에 상관 없이 늘 서로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진심을 터놓으며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웃었습니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면서, 다음 스무 살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유학을 다녀오게 되셨고, 생활은 어떠셨나요? 

 

인생은 많은 순간, 아주 작은 일들이 티핑 포인트가 되고, 순간의 선택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마음 속에만 있던 일들을 현실로 이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매일 매순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부모님의 반대로 해외 유학을 가지 못했고, 돈을 벌게 된 이후에는, 커리어, 결혼, 출산, 육아 등 생애 단계의 과제들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꿈은 꿈으로만 남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많은 친구들은 “우리는 이제 늙었어”, “지금 와서 뭘 하겠어”, “이번 생은 글렀어”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희망이나 즐거움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이 주된 관심사가 되고,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만 남아 있고, 나 자신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돈을 쓸 수 있다면, 나를 위해서도 돈을 쓸 수 있고,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면, 나 역시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제가 함께 공부하고 싶었고,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엄마와 아이가 둘이서 하는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로스쿨 공부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아이를 혼자 돌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아이를 들쳐 업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제 학교로 한참을 달려가야 했고, 먼 거리 탓에 지각을 하기가 일쑤였고,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의 학교 방학은 어찌나 자주 있고, 아이 학교에서 엄마가 할 일은 어찌나 많은 지 제 학업은 뒷전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또, 아이의 학교 적응과 플레이 데이트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아이 학교 어머니회, 클래스맘을 지원하고, 많은 행사들에 참여했지만, 저의 학교 소셜 행사에는 전혀 참석하지 못하고, 새벽까지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외국 생활 뒷면에는 눈물겨운 생활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 생활은 정말 특별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밝고 명랑했던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힘들었지만, 책을 읽고 판례를 읽고 토론하는 일이 즐거웠고, 돈도 없고, 미래는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지만, 매일 누구를 만나도 웃고  오고 가면서, 긍정적인 기운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만나,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Q. 뉴욕 생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의 장녀로, “너는 참 철이 빨리 들었구나”는 말을 들으면서,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 그리고 사회적 시선이, 제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 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이 음악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고, 말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상황에 잘 적응하고, 주변에 잘 맞추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일상의 선택에서부터,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한 판단과 결정까지도 나 자신 스스로에게 주도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 생활은 인생을 처음 시작점부터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말그대로 두번째 스무 살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선호에 대한 발언부터, 내 인생에 대한 선택까지, 조금씩 더 스스로 결정하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또 공부하고 일한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하던 매일의 생활과 정리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 스스로에게 조금은 편안해 진 것, 내가 어떤 음식과 그림을 좋아하는 지 등 나 자신의 취향에 대해 소위 “커밍아웃”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Q.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뉴욕 생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1년 생활을 통해 뉴욕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전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가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저의 성격에 맞는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뉴욕이 딱 자체인 도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뉴욕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쿨 입학식 때 학장님은 “뉴욕을 사랑하는 사람이 뉴요커다” 라는 말씀을 하셨고 저도 그 말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경험했던 뉴욕은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은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고, 오히려 서로 간의 다양성과 다름이 장점이 되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나이와 지역, 업무적 경험의 다소에 상관없이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한 상호간 생각과 의견을 매 순간 자유롭게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친구들이 모여든 곳이었기에, 그 열정에 열정이 더해지는 순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또, 뉴욕 생활은 저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보다 깊어지게 했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의 소호의 갤러리나, 뮤지엄, 아트 페어들에서  세계적인 작품들을 일상에서 만나고, 여러 아티스트들과 개인적으로도 교류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친구들과 미학에 대해 관심사를 나누고, 그림과 음악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세상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뉴욕 생활 이후에 많은 곳을 더 즐겁고 깊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욕은, 전 세계의 중심지이기에, 세계 어느 곳에도 쉽고 비교적 싸게 갈 수 있는 비행 노선이 많아서, 많은 친구들이 여행을 즐기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며, 각자의 독특함을 강화시켜 나간다는 것도 특징인 것 같습니다. 저도 저만의 색깔과 고유성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변호사님의 전문분야 혹은 관심을 갖고 계신 분야는 무엇인가요? 


우연히, 변호사 주니어 시절부터 한국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해외 법무를 진행해왔습니다.  외국 회사를 대리하고, 외국 클라이언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해외 출장을 다니고, 그 중에서도 IT, 테크 회사들의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일 자체가, 일 하면서 만나는 고객들이 너무 좋았고, 열정을 가지고 일하다 보니, 일에도 더 좋은 성과를 내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회사와 일에 쏟게 되었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생과 시간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면서도,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찾아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이기에 주어지는 사회적 혜택과 기회들이 있어,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었고, 또 미래에 대해서도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초년차의 변호사였던 나를 돌아보면 어떤 모습이신가요? 어렸던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연차의 여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 매일 많은 걱정을 하고 살지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다. 그러니,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나고 보면 뭐든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된다. 선택과 결정에 옳고 그름은 없고,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다. 

 

인생의 각 단계마다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이 가장 크게 느껴지고, 절망하는 그 순간만은 나만큼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비슷하지만, 초년차의 변호사였던 나는 법이 너무 어려워 매일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잘하고 싶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들, 선배 변호사들과의 만남이 가장 즐거웠다.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고, 똑똑하고 훌륭한 법조인들의 생활을 통해서 배워지는 지혜와 지적인 가르침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들고, 법조 선배들을 따라 나서서 일을 했고, 함께 하는 그 순간이 행복해 이해타산 생각할 겨를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그런 제 마음이 고객들, 동료들, 선배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공부와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한 후배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 “고민할 필요 없다.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여변회에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변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됩니다. 그런데, 요즘 여변 변호사들을 만나면 마음이 설렙니다.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서로 돕기 위해 나눔을 하고, 여성 변호사로서의 그 특유의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며 나아가는 끈끈함과 성장을 위한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 옆의 변호사도 출산, 육아, 교육, 일과 가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여성이 아닌, 변호사로서의 성장에 대해 얘기하고, 고민에 허우적 될 때 함께 하고 손 내밀어 주는 여변이 있어 마음 한 켠 든든합니다. 

 

 

■ 최신영 변호사 ■ 

 

변호사시험 3회 
한국여성변호사회 교육이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한국사내변호사회 이사 
인하우스카운슬포럼 이사 
세계한인변호사회 이사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
광진복지재단 이사 

 

 

담당 최신영 변호사 Ⓒ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뉴스레터발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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