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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내가 피해자를 위해 일하는 이유

 

정수경 변호사

(사시 39회)

 

 

사법연수원 시절 백야행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내가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영화에 차화연이라는 배우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차화연이 너무너무 예뻐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이 나고 이 배우는 결혼을 하고 배우 은퇴를 하였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이 배우가 컴백했고 영화에 나온다고 했다. 내용도 모르고 다른 배우들도 모른채 연수원 동기와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스포하자면 아동 성폭력에 대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연수생 2명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너는 만약 변호사 되면 저런 사건 맡을 거야? 난 안맡을거야.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을 것 같아”, “어 나는 할 거 같아, 기회가 운다면 이런 사건을 맡을 거야”라고.내 친구는 지적재산권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결국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국선변호사 일을 하고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당시 나는 기도했었다. ‘하나님 만약 이런 사건의 기회를 주시면 저는 하겠습니다’라고.

 

2012년 변호사 개업을 하였고 그해 가을쯤 검찰청인가 법무부에서 이메일을 받은 것 같다. 개정된 성폭력범죄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검찰청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선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메일을 읽고 굉장히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백야행 영화를 보았던 수 년 전의 그 겨울밤이 떠올랐다. 


묘한 느낌, 뭔가 인연인 듯한, 뭔가 준비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하나님 저를 위해 이런 제도까지 만드셨나요 ㅎㅎㅎ’라고 기도하였고 당연히 지원하였다. 개업변호사로서 좋은 기회였고 당시 3년차 변호사들이었던 동기들도 많이 지원했다.

 

법무부에서는 이 제도 정착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서초동 식당까지 잡아 국선변호사 지원자들을 대접까지 하였다.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들을 위한 국선변호사 제도가 생긴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형사법의 역사는 피고인 보호 위주의 절차법을 가지고 있고 피해자는 검사의 권한 뒤로 숨겨져 있었던 이제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지위가 향상이 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제도는 형사법 분야의 혁명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을 현장에서 보호해오던 단체들과 만나 공부도 하였고, 경찰로 검찰로 돌아다니면서 수사 참여를 하고 재판에 참여하면서 보람차게 피해자를 도울 수 있었다. 새로운 제도의 시행 초기였으므로 실재 이 일을 하는 변호사들 외에는 이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건의 개별 내용은 사실 충격과 분노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피해자 혼자 이 과정을 겪는 것보다 변호사로서 뭔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었다.

 

국선변호사 보수 지급은 매우 신속하였고 증액도 잘되어 일할 맛도 났다. 법무부, 각급 검찰청, 국선변호사가 서로 협력하면서 어떻게 피해자를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공부하고 함께 했던 시절이라고 기억된다. 검찰청 보수교육을 가면 담당 검사가 자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면서 고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는 말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의 담당자들은 거의 모두 바뀌었고, 제도는 초기에 셋팅된 대로 그대로 흘러가 잘 정착된 듯보였다.

 

2018년 봄에 법무부가 갑작스럽게 보수 40%를 삭감했다. 좀 놀랐다. 이전에 그 어떤 조짐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견 수렴 절차 한 번 없는 일방적인 통보여서 충격이 컸다. 제도 초기부터 활동했던 나는 확 달라진 법무부의 태도의 차이를 느꼈다. 기분은 당연히 나빴다. 보수가 삭감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뭔가 어른의 세계를 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는 웃고 고개 숙이고 잘 부탁한다고 말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면 ‘니가 더 국선변호사 일을 하든지 말든지 난 상관없어, 난 내 마음대로 할거야, 싫으면 나가’라고 말하는 듯한 차갑고 냉정한 태도에서 받는 상처 같은 것이었다. 화가 났다. 그만 둬야 하나를 고민했다. 뭔가 카운터 펀치를 나도 날리고도 싶었다.

 

페북에 법무부 장관을 향해 비난성 글을 쓰고 개시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법무부는 거시적이고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느라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 같은 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연수원생이었던 그 겨울날 저녁을 떠올렸다. 세상에 정말 악하고 더러운 일이 많은 것을 아직은 몰랐지만 성폭력 피해자, 아동 피해자를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했던 그 밤 말이다. 나는 저런 일을 할 기회가 오면 하겠다고 기도했던 바로 그날이 생각났다. 내가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것은 법무부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결론이 명확해지니 굳이 페북글 게시를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피해자 지원과에서 피해자와의 통화내역이나 문자내역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비대면상담은 보수 지급이 안되고 대면상담만 확인서를 받아오면 보수를 준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일방통보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상담이 얼마나 중요한데 돈을 안주겠다니 대면상담하는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된다고 이번에도 화가 났다.

 

2021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피해자 지원과 직원이 우리 직원들과 나에게 보수 신청과 관련하여 소리를 지르고 오라가라 한 일도 있었다. 내가 직접 검찰청까지 가서 잔소리를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진정을 할까?’, ‘국선변호사 일을 진짜 그만둘까’ 등등. 국선변호사 보수 교육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던 검사는 이미 수년전에 다른 곳에 발령을 받았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될수록 점점 화가 나는데 검찰청 피해자 지원과도 국선변호사의 혈압을 올리는데 정말 한 몫 하다니. 검찰청은 최근 들어 국선변호사의 감시기구가 된 기분이 든다.

 

2021. 10. 5. 자로 법무부에서는 새로운 보수표를 일방적으로 보내왔다. 보수삭감을 넘어 탁상행정 자체인 보수표였다. 이대로면 국선변호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현실도 모르고 어느 분이 책상에서 이런 걸 만드셨나? 정말 눈물이 나왔다. 법무부의 보도자료는 “국선변호사의 부실한 업무수행”을 운운하였다. 어떻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 화가나서 퇴근길에 얼마나 기도가 나왔는지 모른다. “주님 성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불쌍하시지 않으십니까? 이들을 돕는 국선변호사들이 불쌍하지 않으십니까? 이 문제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주님 도와주셔야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집에 가는 1시간 내내 이 기도만 나왔다.
 
나는 법무부 때문에 국선변호사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안하고의 동기가 다른 조직의 어떤 행동때문이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돕는 일은 나의 사명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나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계속하되, 후려치기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변호사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도 못 지키면서 그 어떤 의뢰인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후배 변호사들에게 자조적인 말이나 지껄이는 그저 그런 선배변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보수표가 발송된 이메일과 서울변호사회 이메일, 법률신문 이메일에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여변 상임이사 톡에도 이 문제를 올렸다. 다행히 여변에서 이 문제를 공식을 대응하기로 결의해주셨고 김학자 수석님을 중심으로 TF팀을 만들어졌다. 여러 변호사가 함께  연명부를 모으고, 법무부 규칙 개정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될 수 있게 작업하였다. 법무부과 여변의 면담도 진행하였다. 요며칠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2021. 10. 25. 법무부와 여변 실무팀의 면담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정말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거의하였다. 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었다. 법무부도 국선변호사도 모두 피해자를 잘 지원하겠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이 활동을 잘 하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큰 틀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극도로 분노하였고 화가 난 상태에서 일을 하여 왔다. 그리고 나는 내가 화가 난 것이 매우 정당하다고 나를 변호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나는 이 분노가 나의 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각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뭔가를 행동하는 건 좋다. 그러나 적절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는 동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내가 법무부를 적으로 만들어 무엇하겠는가? 내가 법무부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 무엇하겠는가? 나의 옳음만 증명하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본질은 성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를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법무부도 검찰청도 나 같은 국선변호사도 모두 필요했다. 비난이 본질이 아니다. 협력이 본질이다. 우리 모두는 협력하는 관계다!

 

내가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피해자를 위한 것인가? 나의 옳음을 드러내고 싶은 것인가?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피해자를 도우면서 항상 성실했는가? 아니다. 부족함은 늘 따라 다녔다. 아이는 배고파 우는데 부부 싸움만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분노가 아닌 다른 동기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행정부는 합리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하고 변화하는 좋은 조직이라는 믿음.
나의 후배들에게 변호사는 가치 있는 직업이고 특히 피해자 국선변호사 일은 존귀하고 보상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들을 돕는 많은 동료 국선변호사들에 대한 사랑.


이것이 나의 동기이다. 멋진 동기인 것이다.  
평화와 감사가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동백 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동백이는 이웃을 위해 여러 도움을 주고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행복해한다. 난 이 장면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피해자가 사건이 마무리 되고 “변호사님 그동안 감사했어요”라고 메시지라도 보내면 마음이 정말 따뜻하고 뿌듯해졌다. 사실 이 맛에 국선변호사 한다. 나의 존재와 나의 지식이 누군가에게 필요했고 역할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또 이것은 변호사로서 내가 계속 살아가는데 좋은 영양제 같은 역할을 해왔다(물론 검찰청에서 보수를 지급할 때도 너무 좋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보수가 잘못되었으면 보수를 고쳐야지 국선변호사를 그만두면 되겠나? 본질에 충실히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반드시 응답받을 것을 믿는다.  

 

 

 

■ 정수경 변호사 ■

 

사법연수원 39기

한국여성변호사회 상임이사

現 총신대 이사

現 법무법인 지혜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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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양진영 변호사 Ⓒ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뉴스레터발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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