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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자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왕미양 변호사"

 

 

Q. 한 단어로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철없는 해피바이러스!!

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즐겁고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한번 만나면 또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나 선후배님들로부터 저를 만나면 항상 즐겁고 유쾌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실속은 없고ㅋㅋ). 큰 모임에서도 제가 나타나면 분위기가 밝아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철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저도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매우 행복합니다ㅎㅎ

 

Q. 변호사님께서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이 많이 거슬렸습니다. 그런데 지천명을 넘어선 이후부터는 오히려 제가 다른 분들께 저 자신을 ‘개천에서 용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제 부모님은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농사꾼이었고,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다보니 동네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을 옆에서 지켜보는게 가슴 아팠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로 기억됩니다. 제가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커서 뭐가 되면 좋겠어’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바로 ‘판.검사’라고 답하셨고, 저도 바로 ‘그럼 나 판.검사할게~’라고 엄마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때 어린나이였음에도 엄마가 저에게 ‘판.검사’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의 꿈은 계속 “법조인”이었고, 당연히 법대에 진학했고 부모님의 바람에 가까운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Q. 대한변호사협회 최초로 여성 사무총장을 맡고 임기 만료를 눈 앞에 두고 계시는데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대한변협 사무총장을 맡은지 엇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최초”라는 말은 모험이고 또 최초가 잘 해야 두번째 세번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부담되었습니다. 엉겁결에 사무총장직을 수락하고 난 뒤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제가 대한변협 사무총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이 되었는데, 이찬희 협회장님께서 (이미 저의 한계와 능력을 간파하였는지) 제게 ‘본인이 대외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왕총장께서 변협 사무국 등 대내업무를 중점적으로 챙겨달라’고 미리 업무범위를 정해주셔서 마음 편하게 별탈없이 소임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대한변협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게 된 2년은, 제가 변호사가 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배워야겠다는 새로운 학습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Q. 변호사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모든 변호사들이 자랑하고 싶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형사사건에서 무죄 받은 사건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무죄받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기 때문이겠죠. 저도 2016년도에 아내가 남편을 강간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건의 피고인인 여성의 변호를 맡게 되었고 강간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 당시 위 사건은 피고인이 수사를 받던 중에 구속되었고, 검찰에서 보도자료를 낼 정도로 특별한 사건으로 상당기간 언론을 탔던 사건이었는데, 그때 위 사건을 저와 함께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해주셨던 최은미 변호사님(변시 4회)과 임진 변호사님(사시 42기)이 생각납니다.

 

 

 

Q. 10년 전의 나를 돌아보면 어떤 모습이신가요? 어렸던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연차의 여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의 기본적인 성향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요청해오면 거절하지 못하고 ‘무조건 오케이~~’하는 것 같습니다(나중에는 많이 후회하면서도ㅎㅎ)

지금부터 10년 전, 저는 한국여성변호사회의 6대 박보영 회장님(2011.1.경 대법관 취임) 집행부에서 총무이사(현재 사무총장)직을 맡았고, 이어진 7대 김삼화 회장님 집행부에서도 총무이사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때도 제가 총무이사직를 맡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박보영 회장님과 김삼화 회장님이 저를 선택해주신 것 자체로 감사하여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와 공동으로 총무이사직을 맡은 장윤정(사시 43회), 김숙희(사시 49회), 이지연(사시 49회) 후배변호사님들과 호흡을 맞추며, 회장님들께서 우리 여성변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계획하신 일들(여성변호사회의 조직 체계화와 사업내용 구체화 등)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당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어린 자녀들 돌봄에 소홀하고, 남편으로부터 많은 구박을 받으면서ㅋㅋ).

제가 대한변협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는 기회가 생긴 것은 2011년에 우리 한국여성변호사회 6대 집행부의 총무이사직을 맡게 된 것이 발판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10년 전에 여성변호사회 총무이사직을 힘들다고 거절했었다면 그때 같이 고생하면서 많은 정과 의리를 다져온 위 장&김&이 후배변호사들도 못 만났을 것이고, 또 대한변협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는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저는 후배들에게 ’무슨 일이든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말고 무조건 열심히 적극적으로 해라‘, ’사람들 관계는 情과 義理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개인적으로 혹은 법조인으로서 향후 목표와 계획이 있으신가요.


법조인으로서는,
대한변협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법조 선후배님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후배님들에게 돈을 벌게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저를 만나는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는 법조 선배가 되고 싶고, 선배님들에게는 생동감 있는 에너지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너무 추상적인가요ㅎㅎ 하지만 이것이 제 진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량 엄마’라는 타이틀을 뗄 수 있도록 가족들을 더 많이 챙기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버려서 엄마의 관심보다는 무관심을 더 좋아하시는 시기가 되버렸지만, 그래도 노력해야겠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