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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프랑스 파리 1대학 (Panthéon Sorbonne) 박사과정 2년차에 접어든 변호사 김서현입니다. 파리에서 한국 법무법인의 일을 원격으로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고, 2년 만에 한국에 잠깐 나왔습니다. 서울에서는 프랑스 박사과정 세미나에 ZOOM 으로 참석하며,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세계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이미 이후에 전개될 세상을 살았다고나 할까요? 조금 특별한 삶과 상황에 대해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 제가 살아 온 삶을 우리 여변 선후배님들과 이 자리를 통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에 깃든 자유로운 영혼, 김서현 변호사

-오십대 중반 어느날 훌쩍 프랑스로 떠나,

소르본 법대 박사과정을 밟기까지  회-

 

 

# 갈 바를 모르고 길을 떠나다. : 남프랑스 Aix-en-Provence.
 
1.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정을 오래 참지 못한다. 어렸을 때는 모든 일에 싫증을 자주 냈다. 변호사로 만 15년 일한 2018년 2월 어느 날, 나는 두 개의 큰 트렁크를 들고,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로 떠났다. 물론 2017년 7월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사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긴 휴식이 필요했다. 재충전 없이 계속 변호사 업무를 지속하기는 힘들었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안주하면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전망 좋은 사무실 내 방을 참 좋아했고, 나름 안락했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무언가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변화를 갈망하는 내면의 울림을 무시할 수 없었다. 2017년 여변 송년모임에서 나는 꽤 비장한 각오를 말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내가 이제 프랑스로 떠나면 다시 돌아올지 말지, 다시 돌아온다면 변호사를 계속 할지 말지 모든 것이 미정이고, 나는 국문과 대학원을 마치고 사법시험 볼 결심을 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를 갈망하며 떠난다.”고 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나는 겁 없이 떠났고, 무사히 내 생각보다 더 잘 적응하고 안착했다. 실패도, 성공도, 이 나이쯤 되면 모든 것이 습관이다. 새롭게 도전하고, 성취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이런 떠남도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2. 강렬한 태양, 빛이 쏟아지는 물의 도시 Aix-en-provence

 

  프랑스로 떠날 때, 난 6개월 어학연수 명목으로 학생비자를 받고 떠났다. 다시 생각해도 무대뽀 정신 그 자체였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먹으면 반드시 실행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웠고, 사법시험 1차 외국어도 불어를 선택한 나는 불어를 좋아 했다.그러나 20여년 이상 불어를 덮어 두었으니, 불어 실력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일단 비자를 받기 위한 명분으로 어학원 등록은 했지만,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다. 학원은 대충 다니는 둥 마는 둥, 무조건 좀 쉬고 재충전하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엑상프로방스 IS어학원 건물

 

  나는 한동안 거의 백수처럼 빈둥거리며 먹고 놀았다. 남프랑스란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데, 게다가 프랑스인들조차 살아보고 싶어 하는 엑상프로방스라니! 길을 걸으면서도 꼭 꿈만 같고, 인생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프랑스인 보증인이 없으면 집구하기 어려운 프랑스에서, 난 정말 흡족한 아파트를 구했다. 1735년에 지은 천장 높은 아파트에서, 창밖에 꽃밭을 가꾸며, 그토록 꿈꾸던 로망을 실현하며 살았다. 파랗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툭 뛰어든 것 같은 착각이 밀려왔다. 어학원 건물마저 자연과 어울려 예술작품처럼 예뻤다. 분명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엑상프로방스 우리집 창밖 꽃밭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은 매혹적이다. 어딘가 우물이 있어 사막이 아름답듯, 엑스엔 골목마다 다양한 모습의 분수가 태양빛을 달래며 조화를 이룬다. 어학원에는 나처럼 남불을 좋아하는 나이 많은 북유럽 학생들도 꽤 있었다. 특히 겨울 전후에는 북유럽의 은퇴자들이 6개월씩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다 간다. 그들은 삶을 여유롭게 향유했다. 대학이 많은 엑상프로방스는 젊음으로 활기찼다. Aix-Marseille 대학은 법대가 유명하다. 집 주변 곳곳에 법원이 있었고(1심법원, 항소법원, 상사법원), 건물마다 변호사 사무실 명패가 보였다. 멋진 여변호사가 정장을 입고 법원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나는 법원 앞 광장에 선 아침 재래시장에서 과일과 신선한 야채, 올리브를 사곤 했다.(뛰어야 벼룩이라더니, 무작정 떠난 프랑스에서 하필 법률중심 도시 엑상프로방스, 거기서도 상트르빌(centre-ville) 법원(Palais de justice) 부근에 살았다).

 

(상) 일주일에 세번 열리는 엑상프로방스 동네 꽃시장
(하) 엑상프로방스, 골목마다 서점, 갤러리

 

(좌) 아를에 있는 반고흐 카페
(우)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화장품브랜드 록시땅

 

 

3. 빈둥거리며 먹고 놀다 창작요리 전문가 되기

 

  먹고 놀아도 뭔가 얻는 것은 있다. 2018년 나는 자칭 창작요리 전문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한국에서는 손님을 초대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거의 외식을 하였고, 먹는데 큰 관심이 없어서 정말 대충 먹고 사는데 익숙했다.(물론 아주 가끔은 제대로 챙겨 먹기도 했다. 내가 만든 잔치국수를 한번 맛 본 친구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좋은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지인들(어학원 학생들, 한국 유학생들, 프랑스인들, 교회 식구들)을 초대했다. 역사적 유물 같은 내 아파트에 13명(어른 8+아이5) 모여 식사를 한 날이 최대 기록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서 김서현표 불고기는 아주 유명할 정도로, 내가 만든 음식은 인기가 있었다. 2019년 구정엔 고국이 그리울 유학생들, 한국에서 여행 온 지인 2가족까지, 이틀에 3팀 식사초대를 하고 거의 몸살을 앓았다.(어디서 튀어나온 모성본능인지...한계를 넘어버림) 대략의 레시피로 손대중 요리를 하다 보니, 그때그때 맛이 다르다는 맹점이 있었지만, 나는 매번 맛있는지 확인하고(거의 맛있음을 강요?) 안도했다. 아마추어 요리사가 10인 이상 분량의 손대중 요리를 할 때는 ‘기도’라는 양념이 필수였다. 요리는 정성이고, 기도라는 양념은 정성의 필수요건임을 그때 깨달았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많은 지인들이 남프랑스 여행길에 들렀다. 더러는 며칠씩 먹고 자고 놀다 가기도 하고, 더러는 식사만, 더러는 같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참 여유 있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상) 어학원 수업 후
(하) 어학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날, 물병을 깨드려 패트병이 테이블에

 

4. 마침내 법학석사

 

  내가 그렇다고 마냥 빈둥거리며 먹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법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 법학 관련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변호사 개업 이듬해 야간 법무대학원에 지적재산권 전공으로 입학을 하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논문 자격시험까지 마쳤다. 그런데 내가 쓰고 싶은 논문 주제가 없었다. 맘이 가야 열정도 생기는데, 마음 가는 주제가 없으니 어떻게 논문을 쓰겠는가? 2과목 수업을 더 듣고 논문 없이 석사학위를 받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석사수료 상태로 제적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예술작품 위작에 꽂혀 마침내 논문을 쓰고 싶은 맘이 생겼다. 2016년 가을학기 제적 10여년 만에 복적(復籍)을 하고, 논문을 준비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야간법무대학원 논문도 잘 써야 한다고, 뭐든 대충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영어 공부 안 한지 오래 돼서, 영어논문이나 원서를 읽는 것은 아주 부담이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재인용은 용납하지 않으시고, 하버드, 예일 대학의 주옥같은 논문들을 다 찾아 읽으라 하셨다.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물론 뛰어난 수재들은 절대 이해 못할 곤혹스런 상황이다.), 결국 논문을 쓰기 시작하고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프랑스로 떠났던 것이다.

 

  엑상프로방스 도착 후 아직 살 집을 구하지 못해 호텔에 있을 때부터 교수님은 논문 독촉을 하셨다. 그러나 내가 그 스케줄에 맞출 사람인가.(학생이 교수 스케줄에 맞춰야지, 교수가 학생 스케줄을 따라야 하는 특이한 상황임을 교수님은 일찍이 간파하셨다.) 좁은 호텔에서 논문 자료를 볼 형편이 안 된다고 핑계를 대고, 집을 구한 후에는 신나게 먹고 놀며 한 학기를 그냥 또 보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어, 8월부터는 영어논문 읽으며, 한국 대학원 법학 석사 논문 마무리 작업을 하였다. 그렇게 긴긴 시간을 보내고, 나는 거의 입학 15년 만인 2019년 2월 마침내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소르본 법대 박사과정 진학.

 

  이미 말했다시피, 처음부터 공부목적으로 프랑스로 떠난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떠났다(최소한의 목적은 재충전이니, 계획이 있을 리 없다). 변화가 필요했고, 빈둥거리며 철학하다 보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리라는 믿음 하나로 길을 나선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두드리면 열리는 문도 있지만, 더듬거리다 여는 문도 있다. 석사논문 지도교수님 덕분에 영어논문을 직접 읽으며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나는 한국 사무실의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생활할 정도는 충분히 벌었고, 프랑스에서는 돈 쓸 일도 없었다. 먹고사는 생활비만 있으면 족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매일 매일 너무도 행복했다. 프랑스에 오래 오래 더 체류하고 싶었다. 체류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친김에 박사과정을 밟기로 결정했다.

 

 

소르본 광장 

 

  2019년 2월 석사학위를 받고, 바로 교수님 섭외에 들어갔다. 석사는 지적재산권이지만, 박사는 헌법을 전공하기로 했다. 야간 법무대학원은 전공분야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중 지적재산권을 선택했을 뿐, 나의 가장 큰 학문적 관심사는 헌법이다. 사법시험 공부할 때, 딱 하루 밤새 공부한 날이 있다.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발견한 날, 내가 20대 10여년을 찾고 헤맸던 모든 것이 우리 헌법에 담겨 있었다. 헌법 책을 펴들고 얼마나 재미있던지, 가슴 설레며 공부에 몰입하다 동트는 새벽을 맞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줄도 몰랐다. 


  숙명처럼 전공을 헌법으로 결정하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 받으신 헌법 교수님을 물색하고, 그 교수님을 아시는 지인을 찾아 교수님께 추천받고, 교수님을 만나 파리 1대학 지도교수님을 추천받았다. 그해 5월 파리에서 지도교수님을 뵙기까지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교수님 면담을 마치니 비로소 한숨 돌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날 뉴욕에서 파리로 온 지인들과 2주 정도 프랑스 여행을 했다. 나에게 주는 보상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8월까지 논문주제를 상세하게 풀어 쓴 연구계획서를 교수님께 제출하고, 10월까지 등록서류를 접수시키고, 11월 입학승인을 받았다. 12월 학생증을 받고 나니, 무척 내 삶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갈 바를 모르고 길을 떠나, 그렇게 프랑스에서 파리 1대학 (Panthéon Sorbonne) 박사과정생이 되었다.

 

파리법대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

 

  2019년 11월 박사과정 등록 후, 바로 파리로 이사를 하지 않고 좀 더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렀다. 프랑스는 미국처럼 박사과정 COURSE WORK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3년 이내 세미나 참석 30 ECTS (European Credit Transfer and Accumulation System)를 채우면 된다. 자발적으로 알아서 연구하고, 가끔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논문을 쓰면 된다. 남프랑스 작은 도시, 역사적 유물 같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공부를 하다, 어느날 불현듯 지금까지 살아 온 생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생의 길들이 연결되어, 반드시 와야 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깨달음이 왔다.

 

엑상프로방스 2월 하늘, 비현실적으로 푸르고 맑다

 

  소설에 복선이 있듯, 인생 전반부를 마치고 하프타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지나온 삶의 윤곽이 잡히는 듯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고 하지 않나.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 간 친구들이 많았다. 그때 나도 프랑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딱히 무슨 공부를 할지 목표가 정해지지 않아 도피성 유학이 될 것 같아 참았다. 그 후 문학을 하고, 법학을 하고, 마침내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언젠가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면, 정치학, 인문학, 법학을 다 아우르는 주제로 연구하고 싶은 바람이 마음 속 깊이 있었다. 내 연구 주제가 바로 그러하다. 헌법해석에 대한 연구인데, 그동안의 내 관심사를 다 정리해서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를 잘 아시는 분들은 절대 욕심내지 말라고 하신다. 물론 절제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해야 논문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리라. 2년차 등록 시, 나는 내 연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논문 주제와의 관련성에 대해 교수님을 설득해야만 했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코로나 팬데믹 속에 작년 10월 파리로 무사히 이사를 마쳤고, 벌써 2년차(2020-2021학기)도 다 끝나간다. 교수님은 5년 안에 논문을 마치라 하셨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년 정도.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해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리고 나는 또 꿈꾼다. 70대 중반 이후 내 모습을... 나는 아마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어, 한국이든 미국이든 프랑스든 아직은 미정인 그 어딘가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선택들이 결국은 이 자리로 귀결되었다.”라며...

 

 

코로나 속 간만에 나들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의 이야기는 5월호에 있습니다.
* 각주가 포함된 전체 원고는 파일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김서현 변호사

 

 

사법연수원 32기
現 법무법인 비전 파트너 변호사.
前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감사

 

담당 양진영 변호사 Ⓒ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뉴스레터발간위원회

 

 

 

* 회원칼럼은 작성자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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