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두 번째 스무 살, 뉴욕에서 이스라엘까지, 최신영 변호사

by (사)한국여성변호사회 posted Oct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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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단어로 자기 소개를 해주시고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뉴욕에서 이스라엘까지” 


제가 최근에 다녀온 장소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보다 발이 빠르고, 겁도 없이 손들고 뛰어가고, 마음 먹은 순간 행동하며 당일 비행기표를 예약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 속에서 눈을 반짝이던 호기심 많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시끌벅적함을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얻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의MBTI성격 유형은 ENFP 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아! 역시!” 라고 하십니다.  ^^ 


정열적이고 활동적이며,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과 사교 활동을 즐긴다는 성격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저는 뉴욕에서 1년간 유학 생활을 하였고, 멕시코,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두바이, 아부다비 등을 여행하고, 최근 귀국하였습니다. 

 

 

그 중 이스라엘은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였습니다. 지적인 관심이 많은 여러 나라의 좋은 친구들과 홀로코스트 부터 팔레스타인, 중동, 정치, 역사, 법, 문화, 경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어, 그곳 친구들은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지 많은 걱정과 우려가 듭니다. 

 

 

Q. 최근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오신 것으로 아는데, 어떠셨나요? 

 

“두 번째 스무 살”. 스무 살 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고 공부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레이스, 넌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네가 웃을 때 주변이 환해지는 게 보여”, “너 자체만으로도 넌 충분해.”  많은 친구들은 매일 나이, 국적, 직업에 상관 없이 늘 서로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진심을 터놓으며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웃었습니다.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면서, 다음 스무 살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유학을 다녀오게 되셨고, 생활은 어떠셨나요? 

 

인생은 많은 순간, 아주 작은 일들이 티핑 포인트가 되고, 순간의 선택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마음 속에만 있던 일들을 현실로 이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매일 매순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부모님의 반대로 해외 유학을 가지 못했고, 돈을 벌게 된 이후에는, 커리어, 결혼, 출산, 육아 등 생애 단계의 과제들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꿈은 꿈으로만 남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나이가 되고 보니, 많은 친구들은 “우리는 이제 늙었어”, “지금 와서 뭘 하겠어”, “이번 생은 글렀어”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희망이나 즐거움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이 주된 관심사가 되고,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만 남아 있고, 나 자신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돈을 쓸 수 있다면, 나를 위해서도 돈을 쓸 수 있고,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면, 나 역시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제가 함께 공부하고 싶었고,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엄마와 아이가 둘이서 하는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로스쿨 공부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아이를 혼자 돌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아이를 들쳐 업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제 학교로 한참을 달려가야 했고, 먼 거리 탓에 지각을 하기가 일쑤였고,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의 학교 방학은 어찌나 자주 있고, 아이 학교에서 엄마가 할 일은 어찌나 많은 지 제 학업은 뒷전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또, 아이의 학교 적응과 플레이 데이트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아이 학교 어머니회, 클래스맘을 지원하고, 많은 행사들에 참여했지만, 저의 학교 소셜 행사에는 전혀 참석하지 못하고, 새벽까지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외국 생활 뒷면에는 눈물겨운 생활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 생활은 정말 특별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밝고 명랑했던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힘들었지만, 책을 읽고 판례를 읽고 토론하는 일이 즐거웠고, 돈도 없고, 미래는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지만, 매일 누구를 만나도 웃고  오고 가면서, 긍정적인 기운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만나,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