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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4일 월요일 대한변협신문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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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이 만난 사람-여성변호사회 회장 김삼화 변호사

  
 

“남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게 변호사”

 

여성변호사들의 맏언니처럼 어려움 살피고 대안마련에 애써온 회장

새내기변호사들 멘토-멘티제 도입…7월9일 사상 첫 ‘여성변호사대회’

“공익 위해 일하다보면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후배들에 충고

  
 

로스쿨생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변호사 취업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그렇게 동토의 땅이 돼 버리면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여성변호사들이다.

41기 미취업자의 70~80%가 여성이라는 이야기부터 출근 전날 “남자 변호사 구했으니 나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여성변호사이야기 까지 황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의 대책을 강구중인 여성변호사회 회장 김삼화 변호사를 만났다.

“최근 여성변호사들의 상황이 너무 어렵습니다.”

“사법연수원은 그래도 정량 평가가 가능했는데 로스쿨체제에선 보이지 않는 차별이 가능한 기조가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41기 연수원생은 검찰로 62명이 갔는데 37명이 여자로 59%가 여성이에요. 그런데 로스쿨 1기생은 42명이 검사가 됐는데 그 중 여성이 13명으로 30%에 불과해요.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요. 사기업인 로펌의 경우는 더하죠.”

여성변호사는 1700명 가량 된다. 아직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말에는 1452명이었다. 젊은 여성변호사들의 고충을 덜 방법을 고민 중인 김 변호사는 의욕적으로 여성변호사회의 계획을 설명했다.

“처음으로 7월9일에 여성변호사대회를 합니다. 멘토-멘티제를 도입해 여성변호사회 임원진과 젊은 변호사를 연결해 도움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해요. 저만 해도 변호사를 시작할 때 누구와 의논해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돌이켜보니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환경이었어요. 여성변호사들의 멘토-멘티제를 통해서 멘토 1인당 10명 정도의 청년여성변호사를 연결해 자주 만나 고충도 듣고 조언도 해주는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금년 봄에 변협 여성변호사 특별분과위원회에서 여성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결혼, 출산, 육아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어요. 357명의 여성변호사들이 답변을 하셨어요. 유례없는 반응이라고 변협 직원분도 놀라시더군요. 통계와 분석 작업이 끝나면 각 파트별로 나누어 여변 회원들이 리포트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통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가을에는 보고서와 함께 이에 대한 토론회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정식보고서를 기대해 주세요.”

여성변호사의 취업이나 근무여건의 어려운 문제를 여성변호사가 어떻게 다 해결할 수 있겠는가. 좀더 회원들에게 힘이 되어줄 방법은 없는지 많이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느껴졌다. 10대 로펌에도 설문조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여성변호사회 임원으로 계신 여성변호사들의 흔쾌히 협조해 주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여성변호사회 회원의 상당수가 기수가 낮고 미혼도 많아요. 사실 90%는 결혼, 출산, 육아에 직면한 분들이죠. 이분들을 위해 내놓은 제도가 ‘기간제 변호사제’에요. 교사들은 출산휴가를 위해 기간제 교사를 쓰잖아요. 변호사들이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연수를 떠나려고 해도 6개월, 1년 동안 자신의 일을 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선뜻 결심을 못해요. 변호사업계에도 기간제 변호사제도를 도입해 대한변협 취업정보센터를 통해 대신해줄 분을 찾는 거죠. 변호사 일이 대체불가능한 부분이 많아 쉽지 않지만 안정적인 출산휴가를 위해 꼭 정착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변호사대회는 7월9일 양재동 엘타워에서 5시30분부터 개최된다. ‘사내변호사의 역할과 여성법조인’이라는 주제의 윤리교육을 1시간 동안 원하는 경우에 신청하여 듣고 신입회원 환영회 성격도 띤다. 여성변호사회는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물적 기반이 따르지 않아 안타까운 점이 많다는 김 변호사는 가장 현안으로 ‘사단법인화’를 꼽았다. 

“회비를 내도 세금처리도 할 수 없었거든요. 여성가족부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해도 법적 실체가 갖춰지지 않아 포기해야 한 적도 있어요. 70년대부터 사단법인화가 되어 있고 자체 회관까지 갖춘 여자의사회와 비교하면 아휴∼ 갈 길이 멀어요. 사단법인화 해서 형식을 갖추고 여성가족부, 여성 국회의원들과의 협력 등등 하나씩 일해 나갈 겁니다.”

그동안 여성변호사회는 친목단체 성격이 강했다. 회원수도 많지 않았다. 지난번 여성변호사회장 박보영 변호사가 대법관이 되기 전, 활성화의 기틀을 잡았다.

“지난달엔 청주여자교도소를 방문해 우리가 도울 일이 뭘까를 고민해봤어요. 법률구조단 청주지부와 연계해 여성변호사와의 상담이 가능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다문화가정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야할 것 같구요. 국회의원 중에 여성이 47명이더군요. 이분들이 입법기관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을 드리는 방법도 강구중입니다.”

지난 4월 대한변호사협회가 홍콩변호사회를 방문할 때는 여성변호사 임원들도 동행했다. 홍콩변호사의 50%는 여성이고 신입변호사의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솔리스터, 바리스터로 나뉘는 홍콩변호사사회에서 경력 등 추가요건이 필요하고 좀더 명예도 있은 바리스터의 경우는 여성이 20%에 불과하다는 점은 홍콩도 아직 여성이 고위직 진출에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변협의 국제활동에 여변이 함께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구요, 가서 보니 느끼는 게 많았어요.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는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여 서로 교류하면서 배우고 도움이 될 게 많을 것 같아요. 홍콩은 다문화가정문제에 여성변호사들의 연구가 상당히 많이 됐더군요. 그런데 성폭력범의 신상공개 문제는 이제야 도입여부를 놓고 찬반여론이 뜨겁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의 성폭력범에 대한 규정을 말해주니 너무 열심히 듣고 좋아하더군요. 국제활동도 신경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김삼화 변호사 개인에 대해서 물어야겠다, 싶었다.

  
 

사람의 성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무엇일까?

만나면 혈액형을 묻는 사람도 있고 띠를 묻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성향이나 성격을 가늠하고 싶어서 일게다. 나는 그런 여러 기제들 중에서 가장 성격과의 근접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몇남몇녀의 몇째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정의 중에서 가족 내 위치는 그 사람의 성격에 가장 많은 것을 아로새긴다는 생각을 한다.

“충남 보령이시죠?”

“네, 정확히는 대천이에요. 2남4녀 중 첫째에요. 60~70년대 산아제한 운동이 심하고 한둘만 낳자고 전국이 떠들썩해서 너네는 왜 그리 많으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글쎄요. 첫째라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서울대에 떨어지고 재수할 엄두를 못 내고 장학금 주는 학교를 선택한 것도 첫째라서 겠죠. 내가 열심히 해야 동생들이 본받는다는 생각을 계속해왔긴 해요.”

그녀와 대화하며 드는 느낌은 뭐 도와줄 게 없나를 살피는 큰 언니 같다는 것.

함께 일하는 김지후 변호사가 막내라 잘 맞는 것 같다며 웃는 김삼화 변호사를 보니 돌봐주고 챙겨주는 것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은 고향에선 남들보다는 규모가 있는 농사를 지었다고는 해도 고교부터 타지로 보내시니 늘 마음에 부담이었다. 대천은 청양, 공주까지의 비포장도로를 지나 대전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게 편했고 실제로 대천에서는 고교를 서울로 진학하는 선배들도 꽤 있었는데 서울이 평준화가 되어 당시 충남의 명문인 대전여고로 진학했다. 720명 한학년 중에 대천에서 함께 올라간 소녀들은 모두 다섯 명. 그때 ‘소수자’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소수자로 살 일이 참 많았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진짜 공부 열심히 하게 되더군요. 학원, 과외 열풍이 불던 유신정권 말기인데 학교에서 10시까지 공부하고 돌아오고 자취방에 돌아와 또 공부하고.”

마지막 본고사세대인 김 변호사는 서울대 입시에서 떨어지고 후기에서 사립에 갈 수 없어 가장 등록금이 쌌던 서울시립대를 골랐다. 행정학과 수석으로 들어가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재수를 해서 서울대로 가야 하나 고민이 많던 시기였지만 그냥 다니게 됐다. 아마도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의도대로 풀리거나 원하는 방향은 아니더라도 돌아보면 그게 대강은 맞는 방향인 것.

“처음엔 행시를 하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여자가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게 교사, 공무원 정도 밖에 없었어요. 당시 시립대엔 법학과도 없었고요. 그런데 과 선배 한분이 처음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어요. 사시가 행시에 비해 공부량도 많고 직접적인 전공은 아니었지만 자격증이 주어지니 내가 원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시가 낫겠다 싶었죠.”

당시 시립대에는 여학생 고시반이 없었다. 남학생들만 도서관 한켠 고시반을 이용할 수 있었고 책을 놔두고 강의 들으러 다니고 공부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던 여자선배들과 학장실을 찾았다.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제자들에게 매정하게 안 된다 하실 선생님이 있을까요?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ROTC학군단 건물 한켠에 조그만 방을 마련해주셨어요. 연탄난로를 때가며 공부했죠. 법학과가 아니니 소송법을 들을 수가 없어 다른 학교 고시특강을 들으러 다니거나 혼자 공부했어요. 우리 보다 이전 세대들은 절로 들어가 공부했고 우리 다음 세대는 신림동에 들어간 세대에요. 우린 뭐 강의 테이프도 없던 시절이니 독학이었죠.”

김삼화 변호사의 이런 여학생 대변은 사법연수원에 가서도 이어졌다. 

“1985년도에 동차로 합격했는데 당시에 여성이 6명이 합격해 사상최대 인원이 됐다고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어요. 합격 직후에 이태영 가정법률상담소장님이 1952년 사법시험에서 여성최초로 합격하셨는데 여성법조인 30명이 되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회고하시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사법연수원이 서초동에 있던 시절 남학생들만 기숙사가 있고 여학생들은 통학을 해야 했어요. 여자연수생 셋이 사무국장님을 찾아가 여자연수생을 위해서 방 하나만 주어 집이 먼 여학생들이라도 이용하게 해주십사 했습니다. 그런데 뭐, 거절당했죠. 하하”

소수였기에 당연히 받아야 했던 여러 가지 패널티들이 있었고 남성은 겪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오히려 배려 받지 않았냐는 비아냥이 돌아오기 일쑤. 보수적이고 완고한 법조계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놓고 싸우기 보다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터득이 됐다. 검찰 시보를 하고 있으면 “아가씨, 검사 불러와”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법정의 변호사석에 서 있으면 법원 정리가 와서 “아가씨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여성변호사의 한계나 어려움은 아마도 출산과 육아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고 일에 있어서는 ‘가사사건’에 한정되는 것일 거 같다. 이에 대해 물어봤다.

“첫 애를 낳을 때는 단독사무실을 할 때였는데요, 출산 전날에도 일하고 아침에 애를 낳았어요. 저녁에 법원에서 사건에 관한 문의전화가 와서 처리한 기억이 나네요. 집에서 쉬고 있어도 계속 사무실에서 묻는 전화가 오고 한달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어요. 재판기일에는 동기들, 선후배들이 대신 나가주기는 해도 직접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 생기니까요.”

김삼화 변호사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대학원 세무관리학과에 다니며 세무분야 공부를 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기학원을 다녀가며 공부했지만 박사로 이어지진 못했다.

“아쉬움이 크죠. 가사사건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거기 치중하게 돼고 방송활동도 하던 때라 시간에도 너무 쫓겨서요. 세무분야에 경쟁력이 있는 특수대학원이라 과정이 만만치 않게 어렵기도 했고요. 너무 가사전문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동창들도 일반사건은 제겐 아예 맡기려 들지 않아요. 당연히 가사만 하는 줄 알죠. 그렇지 않은 데도요.”

그러나 김 변호사를 ‘여성’과 떼놓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도 아무래도 여성, 아동 문제 등 소수자, 약자 문제에 관심이 가고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매달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변호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변호사란 남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사람? 그런 거 같아요. 많이 마음을 다쳐서 오신 분들이니 잘 어루만지고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제가 가정법원 조정위원을 12년을 했는데요, 아주 지겹도록 오래 끈 사건들이 많이 기억나요. 한번 벌어진 틈을 메우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많이 느꼈죠. 변호사는 누가 뭐래도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사회로부터 많은 기대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니만큼 사익추구도 중요하지만 놓치지 말아야하는 공익적인 부분, 사회에 대한 기여를 늘 염두에 둬야 해요. 후배들도 그걸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가사사건 하면서 느낀 건데 이기는 게 꼭 이기는 게 아니고 지는 게 꼭 지는 게 아니거든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공익을 위해 일하면 자신이 성장합니다.”

한국여성의 전화, 민우회 자문위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 등 여성 인권신장을 위해 꾸준히 일해 온 김삼화 변호사가 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맡아 청년변호사들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접하니 우리 새내기 변호사들에게도 온기가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 마음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 박신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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